“현대의학과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린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병은 하나님이 치료하고 의사는 중간에서 도울 뿐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심장마비 환자를 응급으로 시술해서 목숨을 살렸다고 해도 개인적인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의사라도 치료에 임했을 테고 호전될 가능성과 악화될 여지가 다 같이 존재합니다. 의사의 손이 막힌 혈관을 열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좌우하는 건 하나님의 손길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환자의 상태를 두고 자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습니다. 최선을 다할 따름이죠.”
윤영원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진료 분야: 협심증, 심근경색증, 동맥경화, 고혈압, 고지혈증, 관상동맥조영술, 관상동맥 성형술, 말초혈관질환
명치께가 아프다. 빨리 걷는다 싶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그밖에 무엇이 됐든 심장에 부하가 걸린다 싶으면 금방 가슴이 아프다. 쓰린 것 같기도 하고, 화끈거리기도 하고, 옥죄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협심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통증이 없으면 안심이라고? 오랜 세월에 걸쳐 숱한 심장질환을 들여다보아온 심장중재시술 전문가 윤영원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도 10% 안팎을 넘나들며 소리 없이 다가와 갑자기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할 수 있단다. 더럭 겁이 난다.
아무래도 연세가 많은 분들 얘기겠죠?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좁아져서 심장근육에 혈액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질병입니다. 통증은 오지만 근육이 손상될 정도는 아니죠. 오히려 심장근육이 제 살 길을 찾아 우회통로를 개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성적인 허혈성심장질환으로 가는 거죠. 반면에 심근경색은 혈관 안에 생기는 뾰루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갑자기 성이 나서 부풀어 올랐다가 터져버립니다. 순식간에 혈전이 쌓이면서 채 준비할 틈도 없이 심근이 망가지는 거죠. 어르신들보다 40대 초중반의 비교적 젊은 층에서 심근경색이 더 잦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막힌 핏줄을 다시 여는 일이 교수님의 전문 영역인 셈이군요.
보통 중재적 시술이라고 표현하죠. 막힌 혈관에 스텐트를 넣어 혈액이 순조롭게 지나갈 공간을 확보합니다. 심혈관은 물론이고 다리를 지나는 핏줄, 대동맥에까지 모두 적용됩니다. 더 나아가 심방중격결손처럼 선천적인 심장질환도 같은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관상동맥 하나만 좁아져도 가슴을 여는 큰 수술을 했지만 지금은 스텐트 시술이 표준 치료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환자들한테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을 주면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적용범위와 사례는 더 확산되리라 봅니다.
시술만 받으면 안심해도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재시술을 받은 날로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재적 치료를 하자면 외부에서 스텐트든 인공판막이든 금속으로 된 장치를 체내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몸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이물질이 들어오는 셈이죠. 그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표면에 혈관 내피세포가 다 덮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은 혈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합니다. 성실한 약물 복용은 시술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이물질이라고요? 그럼 무조건 넣고 보는 게 상책은 아니란 뜻인가요?
예전에는 혈관이 좁아지면 일단 넓혀두는 게 좋다는 견해가 대세였습니다. 요즘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장차 심각한 사태를 부를 확률이 높은 자리에만 스텐트를 넣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림짐작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검사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가 결정을 내리는 거죠. 요즘 많이 하는 FFR(Fractional Flow Reserve)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막힌 혈관 앞뒤의 혈압 차이를 측정해서 편차가 일정 범위를 넘으면 시술을 결정하는 거죠.
비교적 수월하다는 중재술도 겁나긴 마찬가지네요. 미리 피할 방도는 없을까요?
관상동맥질환과 관련해서는 위험인자를 잘 다스리는 게 도움이 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질환에 취약하다거나 유전적인 소인이 분명한 것처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만 조심해도 발병 가능성이 제법 떨어지는 인자들이 있습니다. 흡연, 혈압, 혈당 같은 요소들이 다 여기에 해당합니다. 자신이나 가족 가운데 질환을 가진 분이 있다면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이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생활습관은 심장질환을 미리 막거나 재발 가능성을 낮추는 데 모두 중요합니다.
혈압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얘기니 그렇다 치지만 고지혈증까지 신경 쓰라고요?
약물이 개발돼서 임상치료를 시작한 게 80년대 후반이니 새삼스러운 소린 아닙니다. 지금은 혈압과 마찬가지로 나쁜 콜레스테롤이 심혈관질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식생활 패턴이 똑같아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른 까닭이 무엇인지, 흔히 동맥경화라고 부르는 죽상경화의 발생빈도가 어째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다 밝혀진 상태고요. 이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혈압처럼 약을 써서 정상 범주로 낮추는 건 상식입니다. 안정이 됐다 하더라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지속적으로 약을 쓰는 게 좋습니다.
좀처럼 목소리가 높아지질 않으시네요. 차분하고 침착하시고.
승강기가 층층이 서는 걸 짜증스러워할 만큼 성격이 급한 편인데 환자를 대하면 여간해서 흥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태껏 별 탈 없이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치 도중에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도 주위를 닦달하는 편은 아닙니다.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면 돕는 이들은 더 당황스럽게 마련이거든요. 도리어 스스로 문제를 찾아 신속하게 해결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겁니다. 중재술을 하는 의사는 당장 숨이 넘어가는 환자 앞에서도 평정심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용기와 손재주도 필요하고요.
하고 많은 분야 중에 이쪽을 콕 집어 선택한 데는 성품의 영향이 컸나 봅니다.
2000년 어간에 펠로우를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중재적 심장치료라는 분야가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암처럼 만성질환과 달리 의사의 손에서 환자의 용태가 극적으로 변하는 속성도 좋아보였고요. 후회는 없습니다. 시술을 하는 분야라 임상적인 부담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니까요.
최근엔 오래 전에 치료한 환자분 가족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어요. 34세에 심근경색이 와서 생사를 오가던 분인데 극적으로 살아나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대하니 뿌듯하더군요. 그때 만삭이던 부인이 낳은 아기가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됐더라고요.
말씀을 듣노라니 심장내과에 최적화된 의사란 느낌이 듭니다.
보고 배우면서 빚어지고 주위의 도움에 힘입어 맡은 일을 해나간다는 게 바른말일 겁니다. 우선 영역마다 영감을 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환자를 대접하면 그만큼 신뢰와 존경을 받는 법이라는 걸 몸으로 가르쳐준 선생님이 계셨고,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해서 내과학 교과서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은사님도 계셨습니다. 전문 분야는 기본이고 다른 쪽에 관한 지식도 웬만큼은 갖춰야 ‘몰라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걸 삶으로 가르쳐주신 거죠. 한편으로는 이렇게 마음껏 환자를 볼 수 있는 환경과 전공의와 강사를 비롯해 함께 손을 맞추는 동료들도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중재적 치료는 더 이상 여지가 없을 만큼 발전한 듯합니다.
관상동맥질환과 관련된 중재술은 이미 상당 수준에 올랐습니다. 앞으로는 질적인 향상이 거듭되겠죠. 스텐트만 하더라도 금속이 아니라 차츰 녹아 없어지는 소재로 만든 제품이 나와 있을 정도니까요. 아울러 약물을 이용한 치료법도 개발되리라 봅니다. 판막이상이라든지 선천성심기형과 같은 구조적 심장질환을 치료하는 중재시술 분야도 앞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스트레스요?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얼른 마음을 정리하고 협업을 추진하거나 도움을 요청합니다.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최재인